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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인간 김경희

  찌질한 인간 김경희

저자 : 김경희

출판사 : 빌리버튼

발행년 : 2017

청구기호 : 일반 818 김14ㅉ

추천글

남들처럼 사는 것과 나답게 사는 그 사이 어디쯤.

확실함과 불확실함의 경계에서 오늘을 사는 평범한 우리 이야기라며 소개하는 이 책을 권한 것은 남편이었다. ‘제목이 찌질한 김경희라니, 내가 찌질하다는 거야 뭐야?’ 하며 눈을 흘겼지만 책에 관해서는 한수 위인 남편을 믿고 읽어보기로 했다.

 

나는 간신히 초등학교로 바뀌기 전 ‘국민학교’를 졸업한 기성세대다.

아이가 셋이고 결혼한 날을 열 번 넘게 ‘기념’한(진짜다. 기념한 것 맞다. 큭큭) 아줌마다.

게다가 삼남매의 맏이로 자라면서 해야 했던 수많은 선택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진학, 취업 등 뒤를 이어 똑같은 순간의 갈림길에 서 있는 동생들을 마주할 때 마다 좀 덜 힘들게, 좀 더 편하게 삶을 꾸려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앞서, ‘내 말 들어’라는 말을 쉽게 내뱉었다. (이 문장은 토씨 하나하나 나의 마음과 꼭 같아서 책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그렇게 나는 동생들에게 뼛속깊이 ‘꼰대’였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나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거창한 의미와 철학을 갖다 붙여 내가 제주로 이주해 온 이유를 설명하지만, 실은 매일 그들의 걱정을 곱씹으며 내가 잘 한 일인가 고민하고 결국 또 틀렸을지도 모른다며 불안해한다.

나는 끊임없이 찌질하고, 매일 지친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육지에 계신 부모님께 가지 않았다.

화요일이 휴무인 나에게는 좋은 기회였지만 이리저리 머릿속 계산기 따위를 두드리다 여비에 식사비까지 더하니 어휴... 우리 형편에 무리라는 핑계로 가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 아침 아이들이 저마다 쓴 편지와 정성들여 만든 카네이션도 받았다. 내리사랑이라더니... 나는 참 바보 같은 결정을 했구나. 오늘 또 후회를 한다. 시어머니, 내 부모님, 나를 함께 키워주신 할아버지 할머니. 나와 아이들의 얼굴 한 번 보는 것으로 무엇보다 큰 선물을 받은 표정을 지으실 것을 알지만 가지 않기로 결정한 내가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라는 나의 부모님은 자녀를 부양하는 기간도 길다. 나의 아버지도 그랬다. 자식들은 자신보다 훨씬 오래 공부하고, 열심히 일해 온 부모님은 또 일찍부터 편찮으시다. 그렇게 평생 쉬지 않고 벌어도 자신을 위해서는 쓰지 못하는 내 아빠는 오늘도, 미안하다는 나의 말에 ‘매년 오는 날인데 뭘 그러냐’ 한마디로 나의 죄책감을 덜어주셨다. 사실, 이런 미안함도 오래가질 못한다는 것이 나의 한계.

어린 시절 나는 이 나이가 되면 우리아빠 근사한 차도 한 대 ‘뽑아주고’, 계절마다 해외여행도 다니고, 사회적으로는 인정받는 위치에 올라 빡빡하지만 자존감 높은 일상을 살고, 때마다 부모님께 자랑할 만한 목돈을 척척 드리는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예의바르고 겸손하지만 해야 할 말은 ‘딱,딱‘ 하는 당당함, 높은 구두를 신고 좋은 차를 타며 아이를 낳아도 변함없는 늘씬한 몸매로 많은 이들의 칭찬을 겸손한 미소로 누리고 사는 멋진 여자를 꿈 꾼 적도 있었다. 지금의 나는... 혹시라도 우리도서관에서 그런 여자를 찾는다면 내가 아닌 것만은 확실한 것으로. ^^

집에 돌아와서 혼자 샤워하면서 중얼 중얼, ‘그때 이렇게 되받아칠 걸, 그건 그렇지 않다고 설명해줄걸,’하고 후회하는 찌질함의 대명사인 나는 오늘도 ‘자기합리화’로 나를 위로한다.

그렇지만 혼자가 허락되는 이런 시간에 가만히 돌이켜보면, 그래도 꽤 괜찮은 인생인 것도 같다. 지난 십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나는 순전히 나의 선택으로 세 ‘아기’와 한 몸이 되어(하나는 유모차에, 하나는 등에, 또 하나는 배에) 함께 살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매일을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분이었고, 잘해보고 싶었지만 전혀 배운 적도 없고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삶에 지쳐 어떤 날에는 자존감이 바닥을 뚫고 지하 오천 킬로미터쯤은 들어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만에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가고 어린이집에 머물면서 오로지 나를 보는 시간도 생기고, (운이 좋게도) 다시 일을 시작해 내 이름으로 살아가는 시간도 왔다. 몇 년 전만해도 결코 오지 않았을 거라 믿었던 시간이다.

 

<찌질한인간 김경희>의 작가 김경희는 미혼이고(작가는 언젠가는 결혼을 꿈꾼다고 했음을 빌어 비혼 아닌 미혼으로 표현한다), 나보다 꽤 어리다. 그럼에도 훨씬(?) 오래 산 나에게, 작가가 경험해보지도 않은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으로 큰 위로를 준다. 짧은 챕터들마다의 마지막 문장은 모두 오랜 비염으로 감동적인 순간엔 어김없이 눈물보다 콧물이 먼저 차는 나의 코를 가득차게 한다. 한시간 반 만에 후루룩 읽어버린 이 책을 읽으면서 맞아 맞아, 하며 무릎을 친 것이 여러 번이다. 작가는 자신의 찌질함을 담담하게 써 냄으로써 나의 찌질함을 위로했고 마음 터놓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친구와 한바탕 실컷 수다를 떨고 난 후의 개운함 같은 것을 얻었다.

 

모아둔 돈도 없고 물려받을 유산도 없지만 나와 가족의 행복이 곧 재산이라 다짐하며 즐거운 순간을 쌓아가려는 욕심도 내며 살고 있다. 나는 도대체 이유를 찾지 못하는 많은 내 가까운 사람들을 향한 끊임없는 죄책감들을 조금씩 덜어내며 그래도 노력하고 있음을 칭찬하는 중이고, 그것이 나의 자존감으로 쌓이기를 바라고 있다.

그 많던 친구들은 모두 연락처에만 남고, 프로필 등으로 근황을 훔쳐보며 잘 살고 있구나 짐작할 뿐이지만, 그리고 때로는 그들의 삶을 멋대로 상상하며 나의 삶에 빗대어 쓸데없는 좌절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렇지만... 아무 때라도 전화걸어 나의 찌질함을 폭풍처럼 쏟아내고 나서도 부끄럽지 않을, 벌거벗은 듯 울어내고 나서도 근사한 옷으로 나를 입히고 차려줄 친구가 하나 있다.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나는... 무려 ‘제주’에 산다.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가끔 연락하는 인연들에게 무엇을 하며 사는지, 못사는지 묻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오늘은(소심하니까 전화 말고 문자로,,, 깨톡은 읽음과 읽지 않음이 티가 나니까 그것도 말고)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마음인지. 오늘은 괜찮았는지.

나는 때때로 당신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노라고. 힘을 내지 않아도 괜찮지만 나도 당신과 같이 마음이 쿵 떨어지는 순간이 자주 있다고. 그렇지만 잘 살아보자고.

오늘,

‘당신의 기분은 어떤가요?’

 

-열람실담당 변아영 사서-